문화체육관광부의 2026년도 총예산안은 무려 7조 7,962억 원이다. 이 중 수천 년간 우리나라 문화예술을 지탱해 왔던 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 등 순수공연예술 분야 지원금은 고작 130억 원이다. 게다가 연극, 무용, 국악 등 기초예술진흥에 필요한 문화예술진흥기금은 2026년 고갈 전망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면, 정부와 여야 국회는 당장이라도 이들과 만나 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 등 순수공연예술 분야를 최대한 지원하는 방법을 함께 짜내야 한다. 지원금 분배 재구성이 필요한 때다. 이것이 지난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도 정부 방역에 협조한 순수예술인들에 대한 예의이다.
기자수첩(지원금 분배 재구성 방법 제언_김용숙)
'산업'과 '복지' 투트랙 구조에다가 연극, 무용, 국악 등 순수예술을 덧입히면?
이를테면 순수예술 연극을 보는 두 세 명의 사람이 공연장 근처에서 밥과 커피를 마시면? 그것은 연극산업이 된다.
아래는 관련 내용을 담은 손정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의 대학로 더하기 포럼 발제문(전문)이다. 일독을 권한다.
문화재정 역설: 7조 예산의 환상과 기초예술 생존 재원 법제화 촉구
1. 총예산 증가의 역설: 숫자가 감춘 현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6년도 총예산안은 7조 7,96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3%라는 기록적인 증가율을 보인다. 이는 'K-컬처 300조 원 시대 개막을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거대하고 희망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예술계를 향한 강력한 지원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예산 증가의 물줄기를 따라가 보면, 정작 기초 공연예술 창작의 모세혈관은 여전히 메말라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 숫자의 역설에 직면한다.
2. '성장'은 산업으로 '현장'은 멈춤으로
2026년 예산 증가분의 주요 투자처를 살펴보면,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가 산업 육성과 대중 향유라는 두 개의 큰 기둥에 맞춰져 있음이 명확하다.
특히 K-컬처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른 K-뮤지컬 지원에 241억 원, 콘텐츠 관련 예산 1조 6,103억 원을 투입하여 대폭 확대하고 새로운 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해 총 250억 원 규모의 예술산업 금융지원(융자 200억 원, 보증 50억 원) 을 신설한다. 복지 측면에서는 K-Art 청년 창작자 지원(180억 원, 신규)과 예술인 복지금고(50억 원, 신규)를 신설하며 복지 강화를 천명했다. 또한, 문화 향유 확대를 위해 통합문화이용권 및 청년패스 예산을 2,935억 원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수백억 원에서 수조 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는 '산업'과 '복지'라는 두 축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창작 생태계의 근간인 기초 공연예술 분야는 이 목록에서 소외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대학로의 연극, 무용, 순수음악 등 현장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에 직접 투입되는 핵심 예산은 이 '산업적 성장'과는 무관하게 '열악한 현상 유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우리는 지적할 수밖에 없다.
3. 기초예술 창작 지원금의 극단적인 왜소함
문화체육관광부 전체 문화예술 예산 2조 3,842억 원(2025년 기준) 중 예술가와 단체에 직접적인 창작 활동 지원금으로 할당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의 문예진흥기금은 약 618억 원에 불과하다. 이 618억 원은 전체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예산 대비 단 2.6%에 불과한 수치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마저도 연극, 무용, 음악, 전통예술 등 '공연예술' 분야로만 한정하면(? 왜 한정하나요? 연극산업, 무용산업, 음악산업, 전통예술산업 등 공연예술산업으로 확대하면 되지 않나요? 이 방법 궁리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김용숙 의견), 실질적인 창작 지원 규모는 약 13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연극, 무용, 음악, 국악 등 기초 공연예술 전체에 투입되는 실질적인 창작 지원금 130억 원은 K-뮤지컬 한 분야에만 투입되는 지원금 241억 원의 절반 수준의 예산이다.
4. 창작 생태계 붕괴의 경고
물론 정부의 투자 방향이 '산업화'와 '수출'에 맞춰져 있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 사실이 있다. 바로 오늘날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컬처의 눈부신 성공은 수십 년간 이 130억 원과 같은 열악한 지원 속에서도 묵묵히 창작의 실험을 지속해온 현장 예술인들의 튼튼한 기초 체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창작의 원천인 연극, 무용, 음악 등이 재정적 압박으로 인해 실험 정신을 잃고 복제와 안전한 레퍼토리로 회귀한다면, 5년 후, 10년 후의 K-컬처는 동력을 잃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복지'와 '산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창작의 뿌리인 기초 공연예술에 대한 '직접 지원 예산'을 최소한 물가 상승률과 창작 수요 증가율 이상으로 증액해야 한다.
5. 이중 재정 위기 진단: 문화예술진흥기금 고갈과 기형적인 수입 구조
기초 공연예술의 열악한 환경은 단순히 배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지탱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문예기금) 자체가 붕괴 직전의 심각한 재정 위기에 놓여 있다.
첫째, 적립금의 급격한 고갈이다. 2025년 10월 22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2026년 문화예술진흥기금 고갈을 공식 언급했다. 이는 2003년 헌법재판소의 ‘관람료 대상 부담금 제도’ 위헌 결정 이후 20년이 넘도록 안정적인 수입원 창출을 위한 근본적인 법·제도 개선 없이 5,215억 원의 적립금(2004년 기준)을 잠식하며 연명해 온 결과이다.
둘째, 기형적인 수입 구조이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정보공시 자료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수입은 건물/공간 대여료, 입장료 등 자체 수입이 평균 18.3%에 불과하다. 전체 수입의 81.7%를 복권기금(2,677억 원), 체육기금(1,000억 원), 일반회계(300억 원) 등 정부 내부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특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복권기금은 사용 목적이 '공익사업'에 한정되어 순수 창작 지원에 쓰기 어려우며 매년 예산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규모 예측이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수입원이다.
6. 기초예술 생존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
2025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지적처럼 매년 반복되는 땜질식 예산 확보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이는 문예기금 고갈의 근본 원인인 '안정적인 수입원 부재'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 안정적인 재원 확보는 결국 「복권 및 복권기금법」, 「문화예술진흥법」과 같은 관련 법 개정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법적 제도 개선 방안은 현장 예술가들이 지속해서 요구해 왔으며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에서도 국회에 공식적으로 제출한 안이다.
다만, 법 개정이 단기간 내에 어렵거나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힐 경우를 대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기초예술 지원을 위해 일반회계에서 300억 원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에 지원하고 있다. 기금법 개정이 어렵다면 일반회계 예산의 증액을 통해 기초예술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제 국회와 정부는 현장의 요구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혁신안을 수용하여 즉각적인 법적 조치에 나서거나, 이에 상응하는 일반회계 재원 확보 방안을 통해 기초예술 생태계 지원이라는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첫째, 전입금 법정화이다.
복권기금과 국민체육진흥기금(체육기금)의 전입금 편성 방식을 현행의 '공익 배분'에서 '법정 배분'으로 변경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복권기금 약 2,677억 원 내외와 체육기금 약 1,000억 원 내외를 매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법정 배분은 2001년부터 2013년까지 구)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 제35조에 따라 체육진흥투표권 수익금의 10%(문화 5%, 체육 5%)를 법정 배분하여 재원 안정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명확한 선례를 따르는 것이다. 특히 이 선례가 주목할 만한 이유는 해당 배분 조항이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시행령)을 통해 수익금의 특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배분하도록 정했던 것이었다. 법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기금의 수익금 배분 비율과 같은 세부 사항을 법률에서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흔하며 매우 타당한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결단만 있다면 복잡한 법 개정 과정 없이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라도 즉각적인 시행이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둘째, 사용 목적 확장이다.
복권기금(2,677억 원)과 체육기금(1,000억 원) 등 총 3,677억 원의 재원이 문예기금으로 배분되고 있음에도 정작 순수 공연예술(연극, 무용, 음악) 분야에 실질적으로 배정되는 금액은 고작 130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복권기금의 고유 목적 사업 범위를 현행의 공익사업 지원에서 창작 지원까지 사용 가능하도록 확장시켜야 한다. 기초예술 생태계의 뿌리까지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제도적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영국의 사례는 이 해법의 필요성을 입증한다. 영국국립복권기금 중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Arts Council England (ACE)는 복권기금 배분액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ACE 배분액은 2021-2022 회계연도 약 2억 3천만 파운드 (약 4,436억 원)에서 2023-2024 회계연도에는 약 2억 7천만 파운드 (약 5,207억 원)에 달한다. 게다가 ACE는 이 복권 기금 외에도 정부 지원금(Grant-in-Aid)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는 영국이 문화예술 진흥을 복권 기금을 활용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로 간주하고 있음을 명확히 시사한다.
7. 결론: K-컬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과 제언
정부의 투자가 '산업화'와 '수출 증진'이라는 당면 목표에 집중되는 경향은 시대적 요청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문화 성과 즉 K-컬처의 눈부신 글로벌 약진은 지난 수십 년간 130억 원이라는 미미한 지원 아래서도 창작의 원형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전국 기초예술 창작 주체들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피어난 꽃임을 명징하게 인식해야 한다.
만약 창작의 근원인 연극, 무용, 음악 등의 생태계가 재정적 질식과 기금 고갈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여 실험 정신을 포기하고 안이한 복제와 레퍼토리의 안전지대로 후퇴한다면, K-컬처는 5년, 10년 후 그 혁신 동력을 급격히 상실하는 파국적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의 본질을 문화체육관광부 총예산 7조 원대 속의 순수 공연예술 분야 130억 원이라는 왜소한 배분율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난 20년간의 무책임한 방임에서 찾는다. 문예기금의 안정적 재원 확보는 개별 예술가의 몫이 될 수 없다. 이는 오로지 주무 부처와 집행 기관이 소극적인 방관자적 자세를 벗어나 정부와 국회를 향해 강력한 논리와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관철해야 할 국가적 차원의 정치적 의무이다. 적립금 잠식에 무관심했던 과거의 태도를 즉각 청산하고 현장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 개선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를 위한 노력과 미래의 문화 지형을 설계하는 주체로 태세를 전환해야 한다.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손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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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숙 기자 ws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