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6∙25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 남침하는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시켜 국군의 반격 기반을 마련한 이운산 육군 중령을 2025년 8월 '이달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
이운산 중령(전투 당시 소령)은 1948년 8월 9일 육군사관학교 제7기 특별반 장교 후보생으로 입교해 약 2개월간 교육 훈련을 수료 후 같은 해 10월 12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이운산 중령(전투 당시 소령)은 육군 6사단 제2연대 제3대대장으로 강원도 인제군 현리 북쪽에서 38선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현리, 홍천 지역에서 적을 저지∙격퇴했다. 이후1950년 7월 말까지 충주∙수안보∙문경∙함창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과 제12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연대가 적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격퇴하는데 일조했다.
1950년 8월 3일 육군 6사단은 낙동강 방어선으로 이동해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결하는 능선에 방어 진지를 구축했다. 방어 진지 구축 다음날인 8월 4일부터 북한군은 대규모 공세에 나서 국군은 지연전을 펼치며 약 40킬로미터(km) 후방으로 철수했다.
1950년 8월 13일 교통 요충지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일대에 도착한 이운산 중령은 청로동 북쪽의 무명고지와 175고지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공세적인 방어 작전을 전개하며 진지를 끝까지 사수했다. 이후 적의 공세가 다소 주춤해지자 6사단장은 제2연대에 324고지 방어를 추가로 지시했다.
북한군 제8사단 제103치안연대 주력부대는 1950년 8월 25일 강력한 포격을 앞세워 324고지를 공격했다. 이운산 중령은 적이 진지에 근접했을 때 집중 사격을 지시해 격퇴했으나 인접한 제2대대가 돌파당해 측면이 노출하자 부대를 203고지로 후퇴하고 방어선을 재정비했다.
다음 날인 1950녀 8월 26일 북한군 제8사단 주력이 203고지 일대를 포격과 함께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연대 전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이운산 중령은 대대 병력을 우보역 부근 강둑에 재배치하고 철수 중인 제1대대를 엄호하며 28번 도로를 따라 우보로 진입하던 적을 상대로 기습공격을 감행해 붕괴 위험에 빠진 연대를 구했다.
이후 적의 반격이 거세지며 제3대대는 지연 작전을 펼치면서 후방으로 철수했다. 하지만 인근 과수원에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매설한 지뢰가 폭발하며 이운산 중령을 포함한 7명이 전사하고 20여 명이 중상을 입는 비극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운산 중령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기려 1950년 12월 30일 소령에서 중령으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최인갑 기자 w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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