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는 학생과 가르치는 스승의 열정이 느껴지는 상록야학 © 김용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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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공부'를 넘어 '학교를 배우는 학교'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상록야학. 이 학교는 학비가 없다. 그냥 공부하려는 열정 하나만 가지고 부지런히 나오면 된다. 책값과 학급 공동체 운영을 위한 공동비용 등 약간의 부대 경비는 있지만, 부담이 갈 정도는 아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는 상록야학이 8월 하순까지 2018년 신입생을 모집한다. 대상은 중학교 40명, 고등학교 40명이다. 가끔 정규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젊은 학생들이 입학하기도 한다. 현재 100여 명의 학생과 30여 명의 자원봉사 선생님이 정성을 모아 함께 꾸려가고 있다.
지난 1976년 개교해서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중학교 44회, 고등학교 34회가 된다. 가정 형편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늦깎이 학생들로 40대~80대까지 다양하다. 수업과목은 중·고등학교 정규과정 교과목과 교양과목이다. 졸업장은 수여되지만, 별도의 검정고시를 치러 학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검정고시에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업은 매년 9월부터 시작하며 저녁 7시 20분부터 야간 3시간 수업으로 진행한다. 상록야학의 중학과정은 방학이 없는 주5일 수업으로 8개월마다 1학년씩 진학해 2년 동안 3년 과정을 마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고등학교는 중학교 2년 과정의 튼튼한 기초를 믿고 지난해부터 1년 단기 졸업과정으로 바꿨는데 막상 적용해보니 교사, 학생 모두 어려움이 많아서 다시 2년 과정 환원을 검토 중이다.
특이점은 후원금과 약간의 공공지원 예산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 선생님들은 모두 자원봉사로 나온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잘 가르칠 생각이 없는 이들은 아예 이 학교 선생님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선생님과 학생들이 만나서 공부가 안되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한편 이 학교에서는 '공부'를 넘어 '학교'를 배운다고 한다. 학생 대부분은 가정형편으로 배움을 놓쳤거나, 가부장적 사회에서 형제자매 뒷바라지에 배움의 시기를 놓친 어르신들이 많다. 이들이 평생 가졌던 한결같은 아쉬움과 소망은 "나도 번듯이 학교에 가고 싶다"라는 것.
매년 4월에는 휴일 하루를 골라 야외에 나가서 백일장을 연다. 학생 대부분이 선택하는 소재는 연로하거나 이미 작고한 부모님 추억, 청소년 시절 중고등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훔쳐보며 남몰래 부러워하고 마음 아파했던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오십 줄, 육십 줄에 만나서 동문수학하는 급우들을 가족처럼 아낀다. 학교에서 마냥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대회, 소풍, 수학여행, 연주회 관람 등 주어지는 계기 수업도 가끔 병행하므로 이곳에서 늦었지만 학교를 배우는 것이다.
중학교 과정을 배우는 한 중년 연령대의 학생은 "선생님, 저는 전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상록야학에 꼭 다니고 싶었는데 학교가 없어진 거예요. (상록야학은 원래 있던 회기역에서 몇 년 전 현재의 이문동으로 옮겨 왔다.) 내 팔자에 학교는 없나 보다.. 생각하고 포기했는데 어느 날 동네 전신주에 상록야학 신입생 모집 공고가 나붙은 거예요. 그날로 전화해서 바로 입학 등록을 했죠."
한 어머니는 아들이 중학교 체육선생님이다. 반에서 연세가 제일 많다. 젊은 동창들 공부를 못 따라가겠다며 푸념이 많다. 지난해에는 그 아들이 체육부장으로 있는 중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쾌적한 환경에서 체육대회를 치렀다.
자원봉사 선생 구성은 다양하다. 대학 재학 중 공부시간을 쪼개며 봉사활동을 하다가 취업과 함께 '前 교사'로 이름을 바꾸거나 정규학교 선생이 야간을 이용해 봉사하다가 본인의 유학 등을 위해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직장에서 은퇴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찾고자 봉사하는 대학교수급 선생, 칠십 노구에 가끔 체력이 감당되지 않아 다른 선생의 대체 수업을 요청하면서도 20여 년째 봉사를 멈추지 않는 원로 선생이 있다.
서울특별시 자료에 따르면 20세 이상 인구 785만 명 중 국가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중학교 학력미만 성인인구는 68만 명으로 전체 8.7%에 달한다.
아직도 주변을 둘러보면 표내지 않을 뿐 학력 콤플렉스를 남몰래 지닌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지금이라고 배움에 목마르다면 상록에 문의하고 도움을 청해도 된다. 자원봉사 운영이어서 주간 교무실 상근직원은 없다. 따라서 전화문의는 저녁 6시 이후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시간에만 통화, 상담이 가능하다.
김용숙 기자 ws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