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노믹스(Abenomics)을 풍자한 이코노미스트의 표지(출처: 홈페이지)
◈ 신경영은 일본식 노동정책을 파괴해 비정규직 계약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추진
지난 20년 동안 일본에서 청년실업률의 주범으로 꼽히는 ‘취업빙하기’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1993년 일본 경제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기업경영이 부실화된 것이 주요인이지만 일부 전문가는 취업빙하기가 신경영(新經營)으로 초래됐다고 주장한다.
신경영은 일본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영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주창한 것이다. 가장 먼저 고비용의 주범으로 지목된 종신고용 등 인사정책을 수정했다.
실제 대부분의 기업은 미국식 자본주의인 ‘주주이익 극대화’를 지상과제로 설정했다. 저성장 기조로 매출이 늘어나지 않자 이익을 늘리기 위해 비용을 줄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 기업도 원료를 수입해 가공해 판매하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수입되는 원재료 비용은 줄이기 어렵다.
따라서 쉽게 손을 댈 수 있었던 것이 인건비항목이었고 고비용의 핵심으로 손꼽히던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가 개정됐다. 종신고용제는 계약제로 바뀌었고 연공임금제는 연봉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계약제로도 인건비를 줄이는데 한계가 드러나자 경영자단체는1998년 노동기준법 개정을 유도해 비정규 계약직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법으로 인해 파견근로를 할 수 있는 업무가 확대됐고 2003년에는 제조업에도 노동자를 파견할 수 있게 됐다. 저임금의 계약직 노동자를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1997년 1152만명에서 2010년 1756만명으로 604만명이 늘어났다.
기업들이 정규직원 대신 비정규직을 활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식 신경영의 요체는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는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일본의 특화된 기업문화를 살려야 지속가능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어
일본 노동전문가들은 신경영이 취업빙하기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취업난이 가중됐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일본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취업빙하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는 2012년 12월부터 양적 완화를 주축으로 하는 경제정책을 펼쳤는데 소위 말하는 아베노믹스(Abenomics)이다.
일본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실제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살아나 2013년부터 좋은 실적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적이 호전된 기업들은 고용을 늘리기 보다는 해외기업의 M&A와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로봇도입 등에 주력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요 거점시장의 현지기업을 대상으로 전략적 M&A를 추진했다. 또한 해외에 산재해 있던 일부 비효율적인 생산기지를 일본으로 옮기는 작업도 진행했다.
하지만 로봇 강국답게 생산공정 단순화와 공장자동화로 인력채용을 최소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경영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로봇의 작업을 지원하는 단순보조나 판매원과 같은 일자리는 구인난을 겪고 있지만 정작 노동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정부의 법률개정이 노동시장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파괴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동시장이 건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기업도 지속가능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없다.
경제전문가들은 일본 기업이 1980년대와 같은 호황을 재현하려면 노동시장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기업에 특화된 고유의 기업문화를 살리지 못한다면 아베노믹스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적인 기업문화가 글로벌 기업문화로 승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계속 -
김백건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윤리경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