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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자체(성명/논평)·교육
(논평)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표준계약서 작성 없이는 한국 방송에 미래는 없다"
"표준계약서 준수하며 <기생충>으로 쾌거를 거둔 한국 영화…계약서도 쓰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은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기사입력: 2020/02/11 [15:24]   월드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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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스타 편집국


"표준계약서 작성 없이는 한국 방송에 미래는 없다"

 

지난 2월 10일,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부터 매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2019년 한국 사회에 많은 파장을 낳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랜 역사와 권위를 가진 미국의 영화 시상식 ‘아카데미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하여 각본상·감독상·작품상까지 4개 부문에서 상을 받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19년 <의리적 구토>에서 시작해 2019년 100년의 역사를 맞이한 한국 영화가 오랜 시간 해외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역사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찬란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기생충>은 어떻게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기생충>이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있었겠지만, ‘노동 환경’이라는 요소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기생충>은 서사와 연출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철저하게 표준계약서를 준수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려 노력하는 등 영화를 함께 만드는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한 측면 역시 주목받았다. 당초 계획되었던 주중 야외 촬영도 2018년 여름의 사상 유래 없는 폭염에서 어린 배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야외 촬영을 중단하고 CG를 활용하기로 결정한 선택도 아동·청소년 연기자에 대한 권리 존중의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기생충>의 촬영 현장에서 최대한 영화 노동자를 존중하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영화 노동자와 활동가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2020년 현재의 한국 방송보다 훨씬 열악하며 온갖 산재가 빈발했던 한국 영화 촬영 현장은 2005년 출범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을 중심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탄압을 받던 영화노조의 구성원들은 압박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인 투쟁을 이어나간 끝에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영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노사정 이행협약 체결을, 2015년에는 영화진흥법을 개정하여 표준계약서·표준보수 준수와 안전 보호 의무, 임금 체불에 대한 제재 조항을 삽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직 완벽하게 한국 영화 노동 환경이 개선된 것은 아니지만, 영화노조가 창립한 2005년 전에 비교하면 영화 노동자의 권리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분명하다.

 

이에 비해 한국 방송의 노동 환경은 어떠한가. 말로는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시장이 커지고 있으며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매주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방송 노동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고 처참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9년에 발표한 <2019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는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여 계약한 방송 노동자의 비율이 단 38.6%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설사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방송국이나 제작사의 이해관계에 맞춰 임의대로 수정하거나,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인터뷰 답변까지 있었다.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방송 노동자들은 계속 부당한 처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장시간 근로나 임금 체불을 받아도 문제를 호소하기 쉽지 않으며, 열악한 안전 보호 환경으로 인해 산재 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기도 어렵다. 최근 안타깝게 사망한 CJB 청주방송의 이재학 PD 역시 14년간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을 참아온 끝에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되었지만, 제대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회사는 물론 법원에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다.

 

한국 영화의 노동 환경이 점차 개선되는 사이, 한국 방송의 노동 환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만을 걷고 있다. 영화와 방송은 ‘영상’이라는 같은 매체적인 특성을 공유하는 산업이지만, 산업의 위상과 노동자의 환경은 너무나도 천양지차인 상황이다. 한국 영화가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동안, 한국 방송은 노동자의 권리를 탄압하는 동시에 점차 몰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진정으로 한국 방송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면, 노동자를 착취하고 통제하는 대신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영화 사업과 방송 사업을 함께 영위하는 CJ ENM은 투자와 배급으로 참여한 <기생충>에서 보여준 표준계약서 작성과 노동자 권리 존중의 자세를 방송 노동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않겠는가! 방송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멈추지 않는다면, 한국 방송에는 철저한 몰락의 길만 남게 될 것이다.

 

2020년 2월 11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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