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이충재)이 시간선택제 공무원 故 이수현 님의 죽음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아래는 성명서(전문)
- 직장에서 사람을 소외시키는 빗나간 제도가 만들어낸 비극
-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 개선의 목적은 사람에게 초점 맞춰져야
"자살은 엄연히 사회적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또한 사회적이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저서 자살론의 한 대목이다. 그는 개인적인 기질이나 질환과의 관계가 아닌 사회 구조에서 자살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지난 1월 4일 강남구청 삼성 1동에서 근무하던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한 분이 34살 젊은 나이에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으며 직장에서도 문제될 만한 트러블은 전혀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고 하나 가벼운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건이 있기 전 남겨놓은 일기 형식의 짧은 글에서는 전년도 7급 공무원 공채시험에서 낙방한 것에 대한 좌절감과 어려운 현실에 대한 토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1개월 전 즈음인 12월 9일 통합노조 시간선택제 본부 선전국장에게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 개선이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를 직접 물어보았다는 점에서 같은 통합노조 시간선택제 본부 조합원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 또한 한 달여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금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으로서 겪는 불공정한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시험에 낙방했다는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애시당초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상황을 만든 구조적인 문제도 크다.
지방행정서기보로 근무하던 그는 민원업무를 전담했다고 한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응대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 지금의 근무 형태와 처우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은 그가 꿈꾸던 미래의 모습을 흐려지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현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의 문제점은 우선 근속기간이 늘어날수록 승진과 보수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불안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현재의 경직된 행정 조직구조에서는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이 발붙일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전일제 기준으로 짜여 있는 공직사회 내 모든 제도 속에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은 회식과 단합행사 등에서조차 참석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설령 용기를 내서 참여하더라도 반쪽짜리라는 딱지와 함께 상품권 지급 등에서 차별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결국 지금의 행정 시스템 속에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의 경우 주당 근무시간의 경직성으로 인해 인사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폐쇄적인 행정조직의 특성상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이들에 대한 감시는 엄격하게 이루어지지만, 그러한 통제의 용이함은 역으로 조직 내 동료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는 박탈되기 십상이다.
특히나 하루 4시간 정도의 근무를 수행하는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은 옆자리 동료들과 교류할 기회조차 적을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에 있어 문제의 원인을 주변의 동료들이나 상사들에게만 돌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보다 핵심적인 것은 구조의 문제이다.
통합노조는 이번 사건을 통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임기제 공무원 등 소수직렬 공무원들이 겪는 직장 내 소외감과 차별 사례들을 점검하고 예방할 수 있는 대책에 대해서 정부관계부처에 종합적인 대책을 요구해 나아갈 예정이다.
끝으로 앞서 남긴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라는 에밀 뒤르켐의 글은 110년 전에 쓰여진 내용이다. 한 세기 전에 내려진 진단에 OECD 1, 2위의 자살률을 놓치지 않는 한국사회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매년 반복되는 공무원들의 자살, 사망사고 등에 무관심한 사회적 분위기가 올해는 조금은 더 나아지도록 통합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노력해 나아갈 것이다.
2019.1.8.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