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이하 ADD)가 차기군단무인기(사업 기간: 체계개발 2012~2017년, 양산 2019년 이후(불확실), 예산: 체계개발 1,180억 원, 양산 7,870억 원 ⇒ 총 9,050억 원) 연구개발이 실패하자 법률로 정한 안전 기준을 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연구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차기군단무인기는 2016년 7월 초도비행 중 추락해 동체가 완전히 파손돼 67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비례대표·국방위원회)이 방사청·ADD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차기군단무인기는 「군용항공기 비행안전성 인증에 관한 법률」로 정해 놓은 감항인증(堪航認證/Airworthiness Certification) 항목 중 낙뢰보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현재 사업이 중단됐다. 김종대 의원실이 입수한 ADD 내부 보고서 <차기군단 정찰용 UAV 비행체 간접낙뢰 시험결과 보고서>(2016년 12월)에 따르면 시험 항목의 53.3%가 실패(Fail)했다. 지난 7월에 치른 재시험에서도 ADD는 낙뢰 평균 전류인 20kA도 충족하지 못해 '현 기술 수준 상 낙뢰 시험 기준 충족 자체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항인증은 군용기의 비행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2009년 최초 도입한 제도로, 민항기는 1961년부터 시행해왔다. 감항인증은 민·군용기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개발·개조하는 무인 군용기는 NATO 기준을 따른다. 2015년 10월에는 낙뢰보호 기준을 적용하지 않은 미국의 무인공격기 프레데터가 이라크 바그다드 남동쪽에서 작전 중 낙뢰에 맞아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감항인증 기준 충족에의 요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ADD는 감항인증 항목을 모두 준수하면 차기군단무인기의 사업 시기가 최대 51개월 지연되고 예산도 218억 원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낙뢰보호 기준을 임시 또는 영구히 면제해 줄 것을 요청 중이다. 그리고 ADD는 감항인증이 법률에 규정된 제도이고 시험 항목은 연구원들이 직접 설정하긴 했지만, 낙뢰보호 기준은 군이 요구하는 작전요구성능(ROC)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낙뢰가 예상될 시에 운용하지 않으면 안전성이 입증되므로 낙뢰보호 기준을 면제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상청에서 제작한 자료집 「뇌전 발생 원인과 대책」에는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대기불안정에 의한 낙뢰의 경우 일부 낙뢰의 발생을 예측하지만, 실체 관측자료와 비교하면 위치 차이가 큰 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ADD의 입장대로라면 낙뢰 발생이 빈번한 7~9월에는 무인기를 운용하지 못한다. 차기군단무인기 사업은 북한의 장사정포 등의 도발징후를 사전에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2년 9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긴급구매예산을 요청하며 추진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DD가 2016년 8월, 낙뢰 시험을 비밀리에 진행한 후 연구개발에 실패했다는 결과를 8개월간 은폐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응 방안 마련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했다. 게다가 시험 실시 여부와 결과도 ADD가 먼저 보고한 것이 아니라 방사청 사업팀이 자체 조사 끝에 발견하자 뒤늦게 실패 사실을 실토했다. 2년 전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를 은폐한 데 이어 연구개발 실패 사실도 비밀에 부친 ADD의 대대적 혁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종대 의원은 "감항인증은 법률에 규정된 제도이자 군용항공기의 안전을 입증하는 국제적 기준으로 연구개발 중에 필히 거쳐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며 "비행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채 강행되는 무인기 사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본인들이 스스로 설정한 시험항목이기도 했던 낙뢰보호 기준을 인제 와서 면제해달라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면서 "본인들에게 유리할 땐 성실실패, 불리할 땐 침묵과 은폐로 일관하는 책임자에 중징계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한편 김종대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차기군단무인기 연구개발 실패와 K-9 자주포 폭발사고 은폐 등 ADD의 주요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ADD 혁신 방안을 강도 높게 촉구할 예정이다.
김용숙 기자 wsnews@daum.net